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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0일, 6·10 민주항쟁의 전개와 의의

by 역사다운04 2025.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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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


1987년 6월 10일,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전환점을 만든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6·10 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 이후 지속된 군사독재 체제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저항이자,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1. 배경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국민 분노
6·10 항쟁의 직접적 도화선은 1987년 1월 발생한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당시 치안본부 소속 경찰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색출하기 위해 박종철을 불법 연행해 조사를 벌이던 중 고문으로 숨지게 만들었다. 정부는 이를 은폐하려 했고,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발표는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진실이 드러나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대학가에서 시국 규탄운동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야당과 언론, 지식인들까지 참여하며, 전국적인 직선제 개헌 요구로 확산되었다.


2. 전개 — 6월 10일 국민이 일어나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1987년 6월 10일을 전국 동시다발 시위일로 지정했다. 이 시위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노태우를 후계자로 지명하며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묵살한 데 대한 국민의 직접 행동이었다.

서울을 포함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수십만 명이 운집했다. 특히 서울 명동성당은 시위의 거점이 되었고, 경찰은 최루탄과 진압봉으로 시위를 강경하게 막았다. 이 과정에서 연세대생 이한열이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항쟁은 더욱 확산되었다.

6월 10일 이후 6월 26일까지 전국적으로 시위가 이어졌으며, 전국 37개 도시에서 5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시민, 학생, 종교인, 노동자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고, 민주주의 회복을 향한 열망은 전국을 뒤덮었다


3. 결과 — 6·29 선언과 직선제 개헌
정권은 더 이상 민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1987년 6월 29일,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는 이른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한다.
그 내용은 ▲ 대통령 직선제 개헌 수용 ▲ 김대중 사면 복권 ▲ 언론·학문·집회의 자유 보장 ▲지방자치제 확대 등 8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6월 항쟁이 헌법 개정을 이끌어낸 직접적 성과로 기록되며, 같은 해 10월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통해 제6공화국이 출범하게 된다. 이후 12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 역사상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였다.



4. 역사적 의의
6·10 민주항쟁은 단지 한 정권을 물러나게 한 사건이 아니었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국민이 직접 헌법을 바꾼 최초의 대중운동이었다.
또한, 시민과 학생이 함께 한 전국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1960년 4·19 혁명과도 궤를 같이한다.

6월 항쟁은 이후의 노동운동, 교육운동, 지방자치 부활 등 한국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견인한 ‘전환점’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 가치의 뿌리가 된 사건으로 평가된다.



5. 결론
1987년 6월 10일, 시민들은 거리에서 외쳤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닌,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진심이었다.

우리가 오늘 누리는 정치적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6월 항쟁은 그 자유가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연대 위에 세워졌음을 일깨워주는 역사이다.

타임라인

다음엔 6.10 의 배경이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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