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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6·25전쟁 발발의 배경과 첫날의 기록

by 역사다운04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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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과 분단 — 38선은 어떻게 생겼는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조선은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분할 점령했고,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의 군정 아래 놓이게 된다.

이후 두 강대국의 냉전 구도 속에서 한반도는 점차 이념으로 갈라졌고,
1948년에는 남북에 각각 대한민국(8월 15일)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9월 9일)이 수립된다.
이로써 사실상 두 개의 정부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은 채 분단 상태가 굳어지게 된다.

나뉘어진 한반도

2. 전운이 감돌던 한반도

분단 이후 남북한은 서로를 정통 정부로 주장하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북한은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고, 1950년 초까지 전차와 항공기를 포함한 대규모 병력을 배치한다.
남한은 상대적으로 열세였으며, 국군의 장비는 노후했고 병력도 부족한 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 간 국지적 충돌은 끊이지 않았고,
북한은 무력 통일의 시기를 노리고 있었다.
결국 1950년 6월 25일 새벽, 상황은 폭발하게 된다.

 

3. 1950년 6월 25일 새벽 — 전쟁의 시작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은 38선 전역에서 전면적인 기습 남침을 감행했다.
소련제 T-34 전차와 대규모 보병을 앞세운 공격은 단숨에 수도 서울을 위협했고,
남한은 이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국군은 병력과 무기에서 모두 열세였으며,
불과 3일 만인 6월 28일, 서울은 북한군에 의해 함락된다.
민간인 수십만 명이 피란길에 오르며, 한반도는 전쟁의 포화 속에 휩싸인다.

 

4. 유엔의 긴급 개입

남한 정부는 즉각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은 북한의 침공을 냉전의 확산으로 간주하였다.
6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회원국들에게 대한민국을 지원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를 채택한다.

이 결정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유엔군으로 참전하며,
전쟁은 단순한 남북 간의 충돌을 넘어 국제전 양상으로 확대된다.

 

 마무리하며

1950년 6월 25일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비극의 시작이자,
동시에 국가를 지키기 위한 결단의 시작이었다.

분단된 채 해방을 맞았던 조선은,
단 5년 만에 다시 전쟁의 포화를 맞게 되었고,
그 전쟁은 수백만의 생명과 이산가족, 폐허를 남긴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날의 아침,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6.25전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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